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딕토 16세 (문단 편집) ==== 강의 연설 및 발언 사고 ==== [[파일:external/www.ratzingerfanclub.com/b16_civ_1.jpg]] [[요한 바오로 2세]] 사망 후 교황에 피선될 당시 진보적 신자들은 그의 교황 등극을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교황 즉위 후에도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되었는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동로마 제국]] 황제 [[마누일 2세]]의 편지를 인용해 [[이슬람]]과의 갈등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기에 적힌 내용은 "[[무함마드]]가 가져온 것 중에 선한 것이 어디 있느냐?". 후에 이를 불식시키려고 [[터키]]를 방문했는데, 터키 국민들의 시선이 매우 싸늘했다. 정교분리가 철저하다는 터키 국민들도 그럴 정도니. 그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베네딕토 16세는 모스크를 방문해서는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하는 식으로 손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줬고, 덕분에 여론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파이어아벤트]]가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은 문제가 없었다"고 한 말을 인용한 발언 때문에 [[이탈리아]]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려던 것이 학생들의 격렬한 항의로 결국 강연을 취소하는 사태도 일어났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기레기|언론들의 편협적인 편집]] 때문에 생긴 경우가 대다수다.''' 본래 베네딕토 16세가 말하려는 의도는 그게 아니고, 문제가 된 발언들은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인용한 것인데 이를 언론[* 한국에서는 특히 좌파 언론임을 자임하는 [[레디앙]]에서 우파 학자인 [[사무엘 헌딩턴]]의 [[문명의 충돌]]을 인용한 원색적인 비난 기사가 있었다.]에서 곡해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마누일 2세]]의 편지 인용 역시 강연 원문은 정확히는 이렇다. [[https://cbck.or.kr/Documents/Pope/401754|#]] > 황제는 '경전 보유자'와 '불신자'를 차별하는 것에 관한 개별 사안을 논의하지 않고,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놀라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으로 종교와 폭력의 관계에 관하여 매우 간명한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무함마드]]가 가져온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 달라. 그러면 그가 설파하는 신앙을 칼로 전파하라는 명령과 같은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만 보게 될 것이다.”[* 교황 개인의 주석: "이 인용이 이슬람 세계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본인(베네딕토 16세)의 개인적 입장인 것으로 받아들여 충분히 납득할 만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문장이 [[쿠란]]에 맞서는 교황의 개인적 태도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본인은 이 세계적인 종교의 경전에 외경심을 가지고 있다. 마누엘 2세 황제의 글을 인용한 이유는 오직 신앙과 이성의 본질 관계를 밝히고자 한 것일 뿐이다. 본인은 이 점에서는 마누엘 황제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주장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황제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다음, 폭력을 통한 신앙의 전파가 왜 비이성적인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폭력은 하느님의 본질과 영혼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맥락을 매우 주의해서 봐야한다. 즉, "신앙이 폭력으로 전파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맥락에서의 인용이다.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이란 표현과 세심한 각주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이 인용을 통해 [[이슬람]]과 [[가톨릭]]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폭력선교 절대불가"는 종교적으로는 매우 양보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하고 주장 자체도 매우 바른 주장이지만, 굳이 이런 소지가 있는 대목을 인용할 필요가 있었는가의 문제에서 비판도 가능하다.[* 바로 앞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쿠란]]의 구절을 대놓고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황제는 쿠란의 2수라, 256절에 나오는 “신앙의 문제에 강제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 말은 무함마드 자신이 아직 권력이 없어 주변의 위협 아래에 놓여 있던 때에 작성된 초기 수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는 나중에 쿠란에 정리된 [[성전]]([[지하드]])에 관한 규정도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자.] 한 대목을 더 보자. 역시 [[이슬람]]과 이성적 신학인 [[가톨릭]]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 베네딕토 16세의 오랜 고찰과 학문적 성취, 그리고 신앙에서 우러나온 문장이지만 역시 다른 종교 신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차이를 강조하고 있는 대목으로, 교황이 이런 '차이'에 대하여 매우 민감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하자. > [[무슬림]]의 가르침에서 하느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어떤 범주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성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쿠리 교수는 이와 연관하여 [[프랑스]]의 유명한 이슬람 학자인 로제 아르날데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븐 하즘은 하느님께서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으셔도 되고, 인간에게 진리를 계시하실 의무도 없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신다면 인간은 [[우상숭배]]를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앞 문단에서 이어지는 맥락 상, 이슬람이 바로 전술한 이븐 하즘의 맥락으로 성전을 주장한다는 의미다. 다만 교황은 여기에서 "중세 후기 신학에서도 유사한 입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래에서 논의될 것이다."라고 각주를 달고 실제 본문에서도 솔직하게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충돌점, 그리고 중세 후기 신학의 비로고스(이성)적, 비그리스(헬레니즘)적인 변화를 뒤에 설명하고 있다. 역시 판단은 알아서.]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하느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신앙 활동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말이 있듯, 애초에 연설이 지루한 편이고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을 많이 인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여지가 큰 편이긴 하다. 그의 강연이나 책을 직접 참고하고 판단하도록 하자. 특히 [[교황/명단|역대 교황]]의 강연문들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번역을 해 두었다. 실제 정책 전반은 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보다 오히려 진보적인 면을 보인다. 사회교리의 측면에서는 시장주의에 대한 반대와 신앙과 양심의 자유 문제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무신론]]를 비판할 때에는 종교 [[근본주의]]까지 항상 세트로 비판한다. 어쨌거나 [[가톨릭]]은 그 속성상 전부 보수'''성향'''이란 점을 염두에 두자. 하지만 위의 전적과 더불어 전임자에 비해 과격한 편이었고, 수시로 치는 발언 사고들로 이미지가 이미 잡혀 있어서 어떻게든 [[왜곡]]되는 편. 예를 들어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해 계속 반대 의견을 내왔지만 [[2008년]] 미국 방문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까이거나, 또는 이라크 전쟁 찬성으로 오인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했다. [[교황청]]에서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것 등을 보아도 상당히 개혁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